제목 [Dr.홍의 무명초이야기] <68> 삭발한 여승, 번뇌는 별빛이라 등록일 2016-04-22
글쓴이 웅선클리닉 조회 4649

[출처 : CNB뉴스 2016-03-29]

[Dr.홍의 무명초이야기] <68> 삭발한 여승, 번뇌는 별빛이라



‘파르나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우고….’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승무(僧舞)다. 여승의 춤추는 모습을 그린 승무는 소재의 신비감, 표현의 섬세함, 여인의 가련함, 세속의 욕망, 삶의 번뇌가 녹아 있다. 시를 낭송하다 보면 마음이 정화된다. 아픔이, 슬픔이 그 이상으로 승화된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럽다’는 시인의 음성은 여인의 애련미를 자극한다. 인간 내면을 훑으면서 삶의 고뇌를 아름다움으로 높이는 승무! 필자는 학창시절 이 시에 푹 빠졌다. 시를 낭송하면 마음이 포근해졌다. 분노도, 격정도, 야망도 조용히 가라앉았다.


시를 읽으면서 궁금증도 생겼다. 스님은 왜 머리를 깎을까. 수행하는 사람은 많다. 천주교의 수녀님, 기독교의 목사님, 원불교의 교무님 등이다. 수양을 하는 많은 종교인은 삭발 하지 않는다. 목사님도, 수녀님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할 뿐이다. 오히려 산에서 도를 닦는 도사들은 모발을 치렁치렁 기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스님은 삭발을 한다.


스님의 삭발은 자기수양의 표현이다. 불교에서 머리카락은 인간사의 번뇌를 상징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오욕칠정에서 기인한 잡념과의 단절 의지의 표현이다. 스님이 출가할 때 머리카락을 깎는 까닭이다. 세속의 인연과 번뇌도 머리카락과 함께 날려 수양에 전념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정진하는 스님 옆에 가면 정화되는 감흥도 얻을 수 있다.


필자의 병원에 한 여승이 찾아왔다. 모발을 나게 하는 병원에 삭발을 하는 스님이 방문한 것이다. 조합되지 않는 상황이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필자에게 스님은 말한다. “제가 원형탈모인 것 같습니다.” 원형탈모나 유전탈모나 모발이 탈락되는 것은 같다. 삭발하는 스님이 탈모는 신경 쓸 일이 아닐 듯도 하다.


그러나 원형탈모는 다르다. 자가면역 이상으로 추정되는 원형탈모는 질환이다. 따라서 삭발과는 관계없이 치료가 필요하다. 여승은 어려운 상황의 어린이를 좋은 길로 안내하려고 노력했다. 베풂은 대개 마음과 경제력이 결합돼야 완성된다.


여승은 마음은 넘쳤지만 경제력은 부족했다. 도움 주는 신도들 덕분에 많은 아이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스님은 그것이 마음에 걸렸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방법을 고민했다.


고민이 깊어지고, 걱정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스님은 원형탈모 발생을 "더 많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듯하다"고 짐작했다.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원형탈모는 면역 이상에서 온다.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자가면역 질환이다. 원형탈모가 많은 청소년이나 젊은 층도 스트레스가 아닌 면역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여승에게는 평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랑실천을 하는 스님. 치료를 한 뒤 스님이 말했다.


“제가 욕망을 끊지도 못하고, 교만 했나 봐요. 깨달음의 끝자락도 보지 못한 사람이 승복만 입은 것은 아닐까요.”


조용히, 포근하게 감싸듯 말하는 여승에게서 참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여승과 대화하는 내 입가에서는 학창시절 되뇌었던 한 구절이 맴돌았다. “번뇌는 별빛이라!” 스님의 이웃을 향한 번뇌는 사랑의 별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참 좋은 분을 만나 마음이 정화된 하루였다.


(CNB뉴스 = 김복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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